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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활동사항

[칼럼] 가짜뉴스의 품격

  • 조회수 899
  • 작성자 통합 관리자
  • 작성일 19.07.31

다큐멘터리영화 ‘예스맨프로젝트’는 사실을 따라가기보다 이슈를 만들어가는 일종의 퍼포먼스적인 형식을 취한다. 다큐멘터리제작자이자 영화에 출연한 두 명의 주인공들은 미디어를 종횡무진하며 거대다국적기업이나 정부 그리고 주류미디어 매체를 흔들어 놓는다. 그 방법은 가짜뉴스를 만드는 것이다. 그들이 상대하는 거대집단의 힘은 강력하기에, 자본과 권력을 동원해 각종 미디어를 주무르며 자신들의 유불리에 따라 문제를 덥기도 하고 부각시키기도 한다. 이와 같은 악조건에서 미디어 활동가인 그들이 선택한 최후의 수단이 가짜뉴스였다.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1984년 인도의 보팔에 위치한 유니언카바이드사의 ‘살충제 공장에서 독가스(메틸이소시안) 누출로 일어난 환경재난사건’으로 2800여명의 사망자와 20만 명 이상의 피해자가 발생하였지만 두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보상은 그 정도가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사건의 진실은 묻히게 된다.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할 유니언카바이드사를 다국적 기업인 다우케미컬이 인수하고 나서는 더욱 그 정도가 심해지고 보상 문제는 미디어 이슈에서 아예 사라진다. 이유는 어처구니없게도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졌을 때 주가가 내려갈 것을 두려워한 투자자들이 대거 주식을 매물로 내놓는 상황이 발생해 다우의 경영에 치명적인 손해를 입힐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부조리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미디어 활동가이자 다큐멘터리제작자인 주인공들은 이러한 사실을 취재하고 고발하기보다 엉뚱하게도 가짜뉴스를 만들어 주류미디어를 통해 거짓된 정보를 전 세계에 송출한다. 그들은 직접 영상을 제작해 유포시키기보다는 더욱 대담하게도 직접 다우의 임원으로 속이고 BBC 등 유력 매체와 인터뷰를 하거나 다우를 대표해 특별담화형식의 발표를 감행한다. 담화의 내용은 다우이사회가 전격적으로 보팔의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한다는 내용이다. 그 퍼포먼스 과정을 기록한 작품이 다큐멘터리 ‘예스맨프로젝트’이다. 그러나 명백히 현행법 위반이며 사기꾼으로 보아도 무방하기에 그들은 현행범으로 체포될 수도 있다. 일견 그들의 사기는 사칭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언론매체들을 기만했으며 일반 시청자는 물론 금방 거짓으로 판명돼 한껏 보상에 대한 희망에 부풀었던 인도의 피해자들에게도 상처를 줄 수 있는 행동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겐 그들이 법의 심판을 받게 되지는 않겠는가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다국적기업 다우케미컬이나 어떤 유력매체로부터 고발당하지 않는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보팔의 피해자들이 그들을 연호하고 고마워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보는 이로 하여금 우리 시대의 모순의 정도가 얼마나 지독하기에 오죽하면 저럴까 하는 마음이 들게 된다. 피해자들은 한 결 같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다루어주는 미디어를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상황에서 BBC와 같은 세계적인 매체가 그들이 처한 상황을 다루며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도하고 여타의 다양한 미디어들이 그 내용을 퍼서 나르는 상황이 믿기 어려웠다고 증언한다. 


그들의 표정을 살펴보면 가짜뉴스로 판명돼 비록 피해보상이 신기루처럼 사라졌지만, 이슈화된 것 자체만으로도 만족하고 앞으로 더 싸워볼 힘을 얻은 것 같아 보였다. 감옥행을 불사하고 자신들의 소식을 널리 알려준 활동가들에게 감사한다는 그들의 목소리는 자포자기 상태에서 지푸라기라도 잡은 것 같은 간절함이 엿보였다. 적어도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격해 있었다. 


화려한 로펌을 끼고 있거나 자체적으로 변호인단을 꾸려 수시로 법률자문을 받는 다국적 거대기업이지만 예스맨프로젝트의 활동가들을 고발할 수 없다. 법적으로 따져 그들을 감옥행으로 보낼 수 있겠지만 치열한 법률논쟁 과정 중에 문제가 크게 이슈화되면 득이 될 것이 없다는 사실을 주지하고 있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주가의 폭락이 뻔히 예상되기 때문이다. 다우가 각종 자문 집단에 지출하는 비용은 인도 보팔의 피해자들에겐 천문학적인 숫자일 수 있다. 그 돈이면 보팔의 피해자들은 보상은 물론 재활 및 생계 더 나아가 후손에 미치는 피해까지 구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본은 그 돈을 소위 법률전문가집단에 지출해 주가를 지키고 몇몇 대주주들의 손해를 막고 자본 자신을 수호하는 길을 선택한다. 영악한 다국적기업은 언론 및 표현의 자유에 관한 미국의 수정헌법을 들먹이며 잔뜩 허세를 부리고 다큐멘터리 활동가들에게 아량을 베푸는 태도를 보인다. 알량하기 그지없다. 


최근 들어 가짜뉴스 논쟁이 뜨겁다. 뉴스를 살펴보면 진보적인 일간지인 한 신문 매체에서 ‘가짜뉴스의 뿌리를 찾아서’라는 기획기사를 내놓은 것이 더욱 논쟁을 가속시킨 것 같다. 그 기획기사에서 ‘가짜뉴스의 뿌리를 찾아서’는 은유적 표현이 아니다. 가짜뉴스가 제작되고 생산되는 공장이 어디인가 그리고 어떤 세력들이 공조해 그러한 가짜뉴스를 제작하고 유포시키는가에 대한 르포기사이다. 필자의 입장에선 매우 훌륭한 기획이 아닐 수 없다. 적어도 ‘가짜뉴스’란 용어는 필자에겐 자본을 무기로 정부와 미디어 환경을 장악한 지배이데올로기에 대항하는 저항담론이 선택한 마지막 수단으로 최후의 몸부림이란 뉘앙스로 읽힌다. 자본에 의한 조작이 난무한 거짓된 미디어환경의 스펙터클에 대한 투쟁으로서 카운터-스펙터클을 수행하는 이들의 자기 헌신적인 저항행위가 이제 수구집단이 공장시스템을 가동해 만들어 낸 ‘가짜뉴스’로 오염되는 꼴을 보는 것이 역겹다.  


적어도 진정성의 문제에 있어서 시민정치와 수구정치에서 가짜뉴스는 그 격이 다르다. 전자가 싸워볼 의지도 박탈당한 이들에게 투쟁이라는 행위를 통해 당장은 진보적인 상황으로 바뀌지 않더라도 미래적 가치로 발현되는 희망을 품게 하는 포지티브의 방식이라면 후자의 것은 선거판의 마타도어(흑색선전)보다도 더 악랄한 가짜 미디어 자체가 뿜어내는 네거티브의 방식을 답습한다는 점에서 뿌리를 뽑아야 할 새로운 적폐임이 분명해 보인다.

 


이황석